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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돌아보면 좋은 것이 보인다.


나는 구글킵을 애용한다. 온라인 메모장 중에서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으며, 심플하고 구글문서와의 연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온라인 메모장 어플리케이션은 대항마가 별로 없다. 기능은 좀더 많지만 역시 좀더 무거운 에버노트 정도를 들 수 있을까? 나는 한때 MS워드나 아래한글이 지겨워서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찾아봤었다.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유용한 것이 많이 나와있더라. 이런 저런 워드를 쓰던 중 메모장을 워드 대신 써봤고, 텍스트만으로 되어 있는 골자를 쓰기에는 괜찮았다. 윈도우 기본 메모장은 생각보다 매력있는 워드프로세서였다.


미니멀리스트의 매력


윈도우에서 메모장을 열면 무엇도 묻고 따지지 않고 새하얀 창이 뜬다. 최단시간으로 뜨는 프로그램이다. 창 위에 뜨는 "제목없음", 네 글자는 시크하기까지 하다. 메모장과 그림판, 윈도우 무비메이커같은 유틸은 기능이 아니라 최대한의 가벼움으로 존재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그냥 간단한 것만 쓰려고 했을 때 .TXT 확장자가 가져다주는 특유의 안정감이 있다. 그 어떤 운영체제를 막론하고 버그없이 쓸 수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리는 것, 미니멀리스트의 눈에 메모장의 심플함은 매력적이다. 그렇다. 베가스가 있는데 윈도우 무비메이커는 사라지지 않고, 포토샵이 있어도 그림판의 점유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가벼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유용한 기능


자동 줄바꿈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전까지만 해도 텍스트를 죽 써 나가면 횡으로 끝없이 스크롤해야 하는 압박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한 문서라도 윈도우 메모장을 기피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Alt + O + W를 누르면 자동 줄 바꿈이 되어 일반 워드처럼 세로 스크롤만으로 문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메모장을 보다 많이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된 기능이다. 


메모장에 있는 몇 안되는 버그도 이 자동 줄 바꿈 기능에서 발생한다. Windows XP부터 발생한 버그로 자동 줄 바꿈을 체크하고 문서를 저장했을 시 창 크기를 조절하면 텍스트가 뭉개진다. 이럴 때 Ctrl + A로 텍스트를 전체 선택하면 깨진 텍스트가 복구된다.


메모장에서는 TXT뿐 아니라 서식없는 html파일이나 smi같은 자막파일도 열고 편집할 수 있다. 윈도우 초창기 시절에 메모장은 단순히 워드패드 보조용이었고 용량이 많은 파일은 열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윈도우98 이후부터 파일 열기 용량 제한이 사라졌고, 텍스트 찾기, 바꾸기까지 생겨났다. 메모장에서 Ctrl + H를 누르면 텍스트 중 중복된 단어들을 한번에 찾아 바꿀 수 있다.


블로그 작업의 친구


메모장은 블로그처럼 웹상에서 작업을 해야만 할 때도 유용하다. 블로그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보면 웹상에 게시된 수치라든지, 외우기 힘든 특정 명사를 복사, 붙여넣기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이때 그냥 복붙했다가는 어디서 복사했는지 기록이 남아 검색엔진 로봇으로 하여금 해당 텍스트의 오리지널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단서를 제공한다. 메모장의 복사 붙여넣기는 해당 텍스트에 붙어있는 그 어떠한 서식도 포맷해버린다. 텍스트 세탁의 정석이다.


나는 구글문서라든지, 리눅스의 메모장이라든지 하는 프로그램을 웹작업에 활용해 본 적 있다. 그러자 복붙을 하자마자 글씨체나 자간이 미묘하게 바뀌는 경우가 생겼다. 한번은 리눅스 메모장을 썼다가 아주 조금 바뀐 문서 모양을 인지하지 못해 웹상의 작업을 망친 적도 있다. 복붙의 끝판왕, 윈도우 메모장은 블로거의 좋은 서브워드프로세서다. 


리눅스와의 호환


윈도우 메모장을 리눅스에서 불러오면 깨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는 윈도우 메모장이 EUC-KR 방식이고, 리눅스에서는 UTF-8로 텍스트 파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에디트플러스, 울트라에디트 등의 편집 프로그램들은 자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메모장을 활용할 경우에는 이렇게 직접 인코딩 버튼을 눌러 UTF-8로 변환해줘야 한다.


만약 간편하게 하려면 리눅스와 윈도우간의 텍스트 변환을 해주는 유틸리티 TxtCRLF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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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래픽 UI를 자랑하는 윈도우나 맥을 쓰고 있으면 예전 DOS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윈도우를 쓰다가도 가끔 리눅스 터미널 창에서 명령어를 쳐대기도 한다. 메모장도 그런 기분이 든다. 화면만 띄워놓으면 간이손전등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하얀색. 메모장에 글씨를 쓰면 볼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만 있는 책상 하나에, 나 혼자 텅 빈 방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기능은 가장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미니멀리스트의 워드프로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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